No. 149 “올바른 성경해석의 원리”

<2019년 1월 27일>


문자를 해독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곧 권력인 때가 있었습니다. 특권층만 글을 읽고 이해하며 해석하는 능력을 독점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수메르의 쐐기문자를 터득하는 것이 당시에는 권력이었습니다. 한국역사에서도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반대했는데 이유는 민초들이 문자를 갖고 사용하면 자신들에게 집중되어 있던 기득권이 와해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세 카톨릭교회는 라틴어로 된 성경만을 고수했습니다. 성경해석은 성직자들만의 전유물이어야 종교와 국가권력을 독차지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민들은 성경에 접근자체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서 누구나 읽을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국어로 된 성경을 쉽게 접하는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제는 누구나 성경을 자유롭게 휴대하고 묵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합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아니라고 하면 아닌 줄 알고, 하라고 하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는 단순하지만 확고한 성경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단들도 성경대로 한다며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공부하자며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맞을까요? 답은 성경해석에 달렸습니다. 올바른 성경해석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성경해석의 원칙은 바로 일관성과 객관성입니다. 


일관성의 원칙이란, 성경 안에서 어느 구절을 해석하든 동일한 태도와 관점을 견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말씀합니다. 1) 오직 한분이신 좋으신 하나님과 2) 인류의 문제를 불러온 한 가지 원인은 죄라는 것, 그리고 3) 그 문제를 해결하는 전유주적인 유일한 치료법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시라는 겁니다. 성경을 가지고 장난치는 이단들을 보면 가장 기본적인 성경해석의 원칙인 일관성을 무시하고 자의적(자기 마음대로)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성경해석을 위한 두 번째 원칙은 객관성입니다.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할 때 그 본문이 기록된 당시의 역사, 문화, 사회, 종교, 그리고 언어적 배경을 충분히 살펴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성경의 기자(writer)가 그 본문을 통해서 그 시대의 사람들(original reader)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했었는지(meaning)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서술이면 역사적인 사실로, 시가이면 감정을 표출한 시로, 상징적인 표현이면 상징으로, 비유로 말씀했으면 비유로 즉 성경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총 66권으로 1,189장과 31,173구절, 그리고 774,746단어와 3,567,180글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은 적어도 10가지의 다양한 수단(가죽, 진흙, 파피루스, 펜, 끌, 돌 등)으로 기록되었고, 인간의 문학양식(산문, 시, 연애소설, 수수께끼, 전기, 과학, 역사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주제가 망라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20개의 직업을 가진 40명의 기자들이 1,600년에 결처 서로 다른 10개의 국가에 흩어져 살면서 총 3가지 언어로 2,930명의 인물과 1,551개의 지명을 언급하며 기록되었습니다. 


일관성과 객관성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며 해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