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8 “‘믿음 좋다’에 대한 오해”

<2019년 3월 31일>


저 자신도 그랬었습니다만 사람들은 믿음에 대해 오해를 갖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세상적으로는 보통 ‘통달한 도사’나 ‘법 없이도 살 천사’를 생각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잘 못 됐을 수도 있고, 믿음이 좋지도 않은 사람인데도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오판하고 좇다가 잘 못 된 신앙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의 믿음이 좋다'는 말을 할 때 여러분은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합니까? 성경 많이 알고, 기도 오래하고, 교회출석 잘하고, 여러 부서에서 봉사한다는 것에 기준을 둡니까? 겉모습만으로는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그의 삶과 변화를 보아야 할 겁니다. 얼마나 성경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치고, 얼마나 기도하는 만큼 살아보려고 고민하며, 얼마나 진실하게 신용을 지키며, 얼마나 깨끗하게 돈을 벌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변화된 삶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믿음은 삶과 행위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약 2:14)”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무익한 믿음이요, 헛된 믿음이요, 죽은 믿음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오해는 믿음이 좋은 사람은 모든 사람의 신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의 신뢰를 받게 될 것이고, 신뢰를 받지 못하다면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모든 사람에게 항상 신뢰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사도 바울이 좋은 예가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빈 약속을 하는 사람이라느니, 돈 욕심이 있어서 헌금을 강요한다든지 하는 오해를 받았습니다(고후 7:2). 한 마디로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100%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믿어달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고후 7:3). 


진정으로 믿음이 좋은 사람은, 보통은 남들에게 신뢰를 받습니다. 그러나 신뢰라는 것은 쌍방관계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신뢰할만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오해라든가 선입견 때문에 신뢰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동기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어도 너무 속상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100% 신뢰를 받지 못했는데 우리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자신이 신뢰를 받지 못하면 무조건 상대방 잘못으로 돌리고 오해 탓으로 돌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진심으로 자신이 신뢰할만한 사람인가 살펴야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살펴서 자신의 동기는 깨끗한데 오해를 받는다면 자신의 말과 행동이 자신의 의도를 잘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살펴야합니다. 


그렇게 살폈는데도 오해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면 그 때는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편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뢰받지 못하던 사도 바울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뢰를 받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그로 인하여 비난을 받고 공격을 받으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할 때에 천국에 상이 있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마 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