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6 “하나님, 저 목녀 하다가 왔어요.”

<2019년 5월 26일>


몇 주 전에 오셔서 말씀잔치를 이끌어 주셨던 조근호 목사님께서 가사원웹 원장코너에 “가정교회가 되는 이유는 목녀의 긴 순교” 라고 올리신 글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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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목녀의 희생(긴 순교)이 버티고 있는 한 가정교회는 될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한국교회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할 때, 그 성장의 한가운데에는 열심 있는 여자 성도들의 무서운 헌신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일반교회 성장이 멈추어져 있는 상황에서, 가장 큰 원인은 어쩌면 이 놀라운 헌신의 주역들인 여자 성도들을 세상의 바쁨에 다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고, 또한 현대교회가 그들의 열정어린 헌신을 활용할 줄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하나 더 추가한다면, 아마 그 열정적인 여자 성도들의 자리를 사역자라는 이름으로 누군가가 빼앗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각 교회의 중간 리더인 여자 성도들의 열정적인 헌신을 세상의 바쁨에 서 다시 빼앗아 오거나 그들의 열정어린 헌신을 속히 회복하지 못한다면 정말 한국 교회의 부흥은 앞으로도 요원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정체에서 허덕거리고 있는 지금, 우리 목회 현장에서 가정교회가 될 수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 중 하나는 목녀들의 열정과 헌신의 능력을 잘 이해하고 그들을 다시 사역의 핵심자리로 회복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통계적으로도 목녀의 섬세하고도 열정적인 목양이 70ㅡ80%를 차지하는 목장은 든든히 서가고 성공적으로 운영되는데 반해서 목녀가 사역의 견인차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목장은 침체에 침체를 거듭하는 것을 봅니다. 따라서 가정교회 성공의 키는 목녀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목녀는 음식조리는 물론 목장식구들과 삶의 희로애락과 그 궤를 같이하는 사람입니다. 목원의 슬픔은 곧 목녀의 슬픔이요, 목원의 행복은 목녀에게도 진하게 전달되어 그 행복을 고스란히 같이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지난 날 같이 울며 기도하고, 같이 맘 고생했던 그 모든 힘듦을 한 순간에 보상받는 특권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아내이면서, 누군가의 엄마이면서, 그리고 누군가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남편과 자녀의 뒷바라지는 물론이고 때론 가정의 생계를 위해서 생활전선에서 억척같이 뛰어다녀야 하는 여인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가정의 울타리를 뛰어 넘어 교회의 사역과 목장의 목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숙명처럼 떠안은 사명자로 살아가는 여인입니다.


그러나 어쩌다 한 영혼이 구원될 때면 지나간 숱한 날의 고통들과 마음 졸이며 고뇌했던 일들을 하얗게 잊어버리는 특별하게 지음 받은 여인입니다.


당신들이 없는 가정교회의 미래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부디 건강하소서! 부디 행복하소서! 목녀! 하늘 상이 큰 여인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