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70 “그런데 왜 이런 오해의 말이 돌았는가?” 

<2019년 6월 23일>


<지난주에 이어> 


그런데 왜 이런 오해의 말이 돌았는가? 2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생각해 본 이유는 제가 어떤 때는 와 달라고 요청했는데 거절을 하고, 어떤 때는 오지 말라고 했는데 갔던 적이 있었고, 같은 상황인데 어떨 때는 응하고, 어떤 때는 응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원칙을 갖고 그랬던 것인데 이를 모르는 분이 의문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원칙은 ‘그래서 제자가 만들어 지는가?’입니다. 


보통은 목자가 요청하면 갑니다. 그런데 그냥가지 않고 몇 가지 훈련요소들을 적용시켰습니다. 목자가 ‘못 하겠다. 안 해 봤다’고 부탁을 하면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제공해 드린 가이드를 따라 해 보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격려하며 필요를 채워서 도왔습니다. 목적은 목자를 세우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충분히 갈 수 있는 상황인데도 거절한 경우도 있습니다. 방법이 잘 못 되었을 때입니다. 목장식구가 목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문제나 요청을 들고 올 때거나, 목자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고 3자를 통해 부탁할 때입니다. ‘목자님께 부탁하세요.’ 타일러 보내고, 목자에게 넌지시 어려움이나 애로사항이 있는지를 살폈습니다. 이 역시 목자의 리더십을 길러주고, 목자를 세운다는 이유였습니다. 


방법이 잘 못 된 또 다른 예는 제 아내를 앞세울 때입니다. 교회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목회는 목사인 제가 하고 있고, 목장식구들에게는 목자가 있고, 목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초원지기요 자신들의 목자인 목사가 있는데, 이러한 질서를 따르지 않고, 아내를 통해 저를 움직이려 할 때는 절대로 응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적인 원칙을 따르도록 이끌어 교회식구들과 목자들을 세우기 위한 방책입니다. 


목자들 대부분이 이 같은 성경적인 원칙과 교회의 질서를 잘 알기에 방문요청을 하는 대신에 매주 목회일기를 통해 기도요청을 합니다. 목사는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고, 심방이나 상담은 자신들의 사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도움을 요청하면 못이기는 척하고 응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목자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왜 오해의 말이 돌았는가? 두 번째 이유는 애석하게도 버리지 못한 옛 습관(죄된 본성) 때문입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면 의문이 있거나 오해가 생기면 1) 본인에게 직접 이야기합니다. 2)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램을 직접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더욱이 믿음의 사람이라면 3) 이야기 했는데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도하는 것을 택하고, 잠잠한 것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믿기에 사랑을 앞세우고, 배려를 앞세우고, 안타까운 마음을 발동시켜 들추기보다 덮으려 하고 주의 이름으로 품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는 어떻습니까? 의도가 없고 순수한 것처럼 포장을 하지만 비난만 남고 불신만 조장됩니다. 이들은 1) 본인을 찾지 않고 제 3자에게 불평을 유포합니다. 2) 대안 없이 모호하게 비판만 늘어놓습니다. 행여 3)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크게 목소리를 냅니다. 왜 그럴까요? 폭로가 목적이고, 고발이 목적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의도도 과정도 결과도 선하지 않습니다. 주변에 이런 이들이 있으면 무시하기 바랍니다. 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무관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