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78 “역사를 모르는 백성은 장래가 없다”

<2019년 8월 18일>


우리는 고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져 지내고 있고, 74년 전의 일이라 체감도 못하고 지나지만 지난 8월 15일, 목요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광복절이었습니다. 해서 오늘은 독립운동가요, 언론인인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제목으로 하여 일본의 침략과 광복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고국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에 위치해 있으며, 삼면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 반도로 지정학적 요충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압록강 건너 북서쪽으로는 중국이, 두만강 건너 북쪽으로는 러시아가, 동남쪽 동해 건너는 일본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어 예로부터 이들의 침략을 수없이 받아왔습니다.


특히 왜구의 침략은 빈번했습니다.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은 430여년 전의 일이고, 근대사를 보면 1875년 운양호 사건을 빌미로 일본의 협박에 의한 강화도 조일수호조약으로 조선의 수난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군함 운양호가 해로 측량을 빌미로 우리 해역에 접근해 포격전이 벌어졌으나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당하지 못해 아군이 후퇴하므로 일본군이 강화도에 상륙하여 살인 방화 약탈을 하여 강화도를 초토화시킨 사건입니다. 


조약의 첫 강요가 “조선은 20개월 이내에 부산, 원산 그리고 인천을 개항한다.”였고, 그 후 수차례 불평등조약을 거듭해오다가 1905년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 5적(당시 대한제국의 8명의 대신 중,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무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에 의해 우리나라의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그로 5년 후, 대한 총리의 반역으로 한일합병이 되었습니다.


8개 조로 된 한일합병조약의 제 1조는 “대한제국 황제는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한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넘겨준다.”고 되어있어 이로 인하여 대한제국의 모든 국권은 완전히 상실되었고, 일본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었으며, 우리 민족은 자유, 생명, 재산권, 그리고 성과 이름, 말과 글 등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그렇게 36년간 일제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떻게 해방을 맞이했는가? 미국이 해방 9일 전, 1945년 8월 6일 새벽에 일본의 히로시마와 3일후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함으로 최소 30만 명이 사상했고, 당황한 일본천황이 8월 15일 정오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므로, 2차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우리는 꿈같은 해방을 맞게 된 것입니다. 승전국인 미영소의 모스크바회의의 결과로 남북 분단의 비극을 맞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해방되던 1945년,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은 67불로 생활수준은 세계 최하위였고, 평균수명 43,8세, 유아 사망률은 1,000명당 102명으로 인도 다음 세계 2위였으며, 문맹자가 77%로 참담한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1950년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으로 국토는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채 30-40년도 지나지 않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웠고, 가난을 극복하고 인재를 키우는 교육열 세계 1위, 평균수명 81,2세, 전자/자동차/조선업/철강을 통해 수출 세계 6위, 의료보험은 미국보다 앞섰고, 선교는 세계 2위, 경제는 세계 12위로 급부상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