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5 “고난은 잠정적”

<2018 08 12>


다음은 최영기 목사님이 가사원에 올리신 칼럼의 일부분입니다. 지난 몇 주간 사경을 헤매셨던 사모님 곁에서 쓰신 글이어서 그 내용이 더욱 와 닿습니다. 원 제목은 “고난이 사역이다”인데 2번에 나누어 싣기에 제목을 임의로 바꾸었습니다. 


참, 사모님은 월요일(8/6)에 퇴원하여 댁에 계십니다. 기적을 경험하여 ‘고통 없이 임종을 맞게 해 달라’던 기도제목은 ‘무겁게 짓누르는 암 덩어리가 더 자라지 않고 사그라지도록’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도해 주신 성도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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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난과 고통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어릴 적에 주사를 맞을 때에는 아파서 울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주사를 맞을 때는 울고 싶은 것을 참아야 했습니다.


고통을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하는 것은 저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세가 높은 분들이 몸이 아플 때 입원시켜 달라고 하고, 수술 받겠다고 하면 젊은이들은 “세상을 살만큼 사셨는데, 왜 저러시나?” 싶을지 모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고통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상 떠날 때 고통 없이 편하게 떠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오래 동안 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런 기도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과 더불어 고난을 나누기 위하여 자원하여 인간으로서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겪었습니다. 아니, 어느 인간도 겪을 수 없는 고통을 다 겪었습니다. 사생아가 아닌가 의심도 받았고, 사단의 하수인 이라는 비난도 받았고,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도 당했고, 그리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주님이 겪은 고난에서 자신은 면제해 달라는 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떠날 때 꼭 필요하다면 고통을 허락하셔도 좋습니다. 고통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만 보이지 않게 해주세요.”


인간의 고통과 고난은 오랜 세월 철학자들이 씨름했던 주제이고 이 씨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딜레마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신이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구출 할 수 없다면,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전지전능한데 인간을 고통 가운데 버려둔다면, 신은 선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동시에 증명해 보여주시고, 이 딜레마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잠정적인 것이고, 언제인가 고난과 고통을 인간의 삶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부활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잠정적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고통과 죽음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아직 고난으로 가득 찬 파괴된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나도 예수님처럼 고난을 감수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